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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게임 기획,디자인

[기획자의 노트] 무조건 실패하는 게임 특징

by Excidus 2026. 1. 25.

'무조건' 실패하는 게임 특징 (개발자 필수 시청) - YouTube

콤므의 게임연구소 유튜브 채널의 영상을 보고 내용 정리 및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게임 산나비는 출시 전 “재미가 없다”는 평가로 인해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한 작품이다. 이 게임의 핵심 시스템은 사슬팔을 이용한 스윙 액션이다. 그러나 초기 베타 버전에서 사슬팔의 조작감은 혹평을 받았다. 문제는 단순한 버그가 아니라, 시스템이 지나치게 정직했다는 점이다.

 

초기 사슬팔은 발사된 길이만큼 그대로 고정되었다. 사슬이 길면 바닥에 끌리고, 짧으면 충분히 움직이지 못했다. 그 결과 스윙 액션은 답답해졌고, 플레이어가 기대한 시원한 이동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시스템은 플레이어의 입력을 그대로 따랐지만, 플레이어가 원하는 결과는 만들어주지 못했다. 이때 개발자는 문제를 “조작이 불편하다”라고 해석했고, 사슬팔의 길이를 직접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했다.

 

그러나 결과는 더 나빠졌다. 유저는 조작이 더 어려워졌다고 느꼈고, 해야 할 입력이 늘어나면서 스트레스가 커졌다. 원하는 액션을 즉각적으로 만들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이 드러난다. 사용자는 좌표와 반지름을 계산하며 스윙하지 않는다. 사용자는 단지 “저쪽으로 시원하게 날아가고 싶다”는 의도를 가질 뿐이다. 즉, 사용자는 수단이 아니라 결과를 원한다.

 

이 현상은 인간공학에서 말하는 ‘걸프 오브 익스큐션(Gulf of Execution)’으로 설명할 수 있다.

참고 사이트: 두 가지 UX 격차: 평가와 실행 - NN/G

이는 사용자의 의도와 실제 실행 사이의 간극을 의미한다. 인간은 정확한 입력을 하지 못하고, 손은 흔들리며, 판단은 즉각적이지 않다. 따라서 디자인의 역할은 이 간극을 메워주는 데 있다. 이 원리는 스마트폰에서도 사용된다. 초기 아이폰 개발자 역시 사용자의 손가락을 신뢰하지 않았다. 손가락은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폰은 ‘동적 터치 타겟’이라는 방식을 사용해 사용자가 눌렀을 법한 버튼을 시스템이 추측하여 보정한다. 이것이 터치가 잘 된다는 착각을 만든다.

 

산나비 역시 같은 방향으로 답을 찾는다. 개발자는 사슬팔이 어떻게 발사되었든, 결과적으로 기분 좋은 스윙이 되도록 시스템을 바꾼다. 사슬이 너무 길면 자동으로 줄이고, 너무 짧으면 자동으로 늘린다. 이제 시스템은 입력을 그대로 수행하지 않는다. 입력을 해석해 의도에 맞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유저는 정확히 조작했다고 느끼고, 스윙이 잘 됐다고 착각하며, 실력이 늘어난 것처럼 느낀다. 그러나 실제로는 시스템이 뒤에서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다.

 

실패하는 게임은 유저의 명령을 그대로 따르는 게임이다. 이런 게임은 정직하지만 재미없고, 공정하지만 불쾌하다. 인간은 실수를 하고 의도를 완벽하게 전달할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좋은 게임은 유저의 말을 번역한다. 게임 시스템은 속기사가 아니라 통역사여야 한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시스템이 좋은 조작감을 만든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손도 흔들리고 판단도 늦는다. 그래서 게임에는 ‘보정’이라는 이름의 거짓말이 필요하다. 맞은 것처럼 보정하고, 잘한 것처럼 연출하며, 성공한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이 거짓말은 유저를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유저를 즐겁게 하기 위한 거짓말이다. 산나비의 사슬팔은 이 철학을 구현한 사례다.

 

기획자는 유저가 무엇을 누를지를 설계하는 사람이 아니다. 유저가 무엇을 느끼게 할지를 설계하는 사람이다. 유저의 손을 믿지 말고, 유저의 마음을 믿어야 한다. 산나비는 정직한 시스템에서 의도를 읽는 시스템으로 바뀌며 살아남은 게임이다. 그리고 이 사례는 말해준다. 재미는 정확함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재미는 착각에서 만들어진다.